1969년 미국은 깊은 위기에 빠진다.
결정적인 이유는 베트남전쟁의 군사적 패배였다.
수만명의 학생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연일 워싱턴 시내를 행진했고
베트남 용병들의 사기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저하 됬으며
병사들의 마약중독, 상사를 살해하는 모반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었다.
미국경제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좀 더 효율적인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의 부상 탓에 1965년에 최고치를 경신한 미국 기업의 이윤율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며 무역흑자가 늘어나는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달러 대신 금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한다.
미국기업들은 외국으로 진출하거나 외국기업들을 사들여야 살아 남을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세계화 현상의 시발점이 된다.
베트남전쟁의 여파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무역적자로 인해
미국경제 곳곳에서 빚이 폭발할 지경으로 불어났다.
위기에 처한 1970년대 초 미국의 기득권 세력은 국제정책의 방향을 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영향력 있는 정치적 인물이나 기업인들은 록펠러 가문을 중심으로 몰려 들었다.
그 가문의 권력 중심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창립된 뉴욕의 외교협회(CFR) 였다.
국무장관 키신저는 록펠러 가문이 직접 고른 그들의 추종자였다.
1973년 그들은 처음으로 일본을 부자클럽에 합류 시키며
록펠려 형제를 중심으로 국제조직인 삼각위원회를 창립한다.
삼각에는 유럽, 북미 그리고 처음으로 일본까지 국제 질서를 개편하기 위해 편입 시키게 된다.
창립회원으로 지미카터, 조지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연준의장 폴 볼커 앨런그린스펀 등도 있었다.
미국 외교협회(CFR)에 버금가는 최정상급 조직을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그룹이다.
그들은 비밀리에 정기적으로 정책회의를 열어 미국기업과 미국은행의 영향력을
세계적으로 공고히 한다는 계획을 시행해 나간다.
소수의 지배엘리트로 전세계 사회를 면밀히 감독하고 통제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질서를 정착 시키겠다는 목표이다.
법률 제도상 국민들을 지켜줄수 밖에 없는 책임을 가진 민주주의 정부의 속성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정부기관을 민영화하고 탈규제화하여 민간자율 자유시장 공정경쟁이라는 이름하에
무방비상태의 대다수 시민들에게 금권 지배력을 행사 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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