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서 유전자조작 식품 프로젝트의 미래에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생명공학분야에서 35년 넘게 일한 아파드 푸즈타이라는 과학자가
GMO식품을 동물에게 먹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그 무렵 GMO식품의 영향을 따지는 또 다른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몬산토가 돈을 대고 있었다.
이 연구는 유전자조작 식품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기에 독립적인 푸즈타이의 연구 결과는 더욱더 중요시되었다.
그는 몇몇 집단의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중 한 집단에는 유전자조작 감자를 먹이기 시작하였다.
110일 남짓 그 감자를 먹은 쥐들은 성장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유전자 조작 감자를 먹은 쥐들은 보통 감자를 먹은 쥐 들보다 눈에 띌 정도로 작았고 몸무게도 훨씬 덜 나갔다.
한층 더 놀라운 점은 GMO감자를 먹은 쥐들이 간과 심장의 크기가 현저히 작고
면역체계도 더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결과는 GMO감자를 먹은 쥐들이 뇌의 크기조차 확연하게 작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이 사실을 폭로하는데 그가 한 말은
생명공학, 정치, 과학 그리고 GMO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이틀도 지나지 않아 푸즈타이는 로웨트 연구소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그가 수행한 연구는 언론에 일절 발언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의 논문은 몰수당한다.
또한 그는 그가 이끌던 연구팀의 팀원들에게도 말조차 걸지 못하도록 저지당한다.
팀은 해산되었으며 연구소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바뀌었다.
뒤이어 로웨트 연구소는 푸즈타이의 연구가 단지 유전자조작 감자를 먹은 쥐의 데이터와
독성이 있는 감자를 먹은 쥐의 데이터를 혼동한 것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다.
1999년 2월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에 분노한 13개국의 과학자 30명이
푸즈타이를 지지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한다.
이 서한은 런던의 가디언지에 발표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GMO곡물의 안정성과
푸트타이의 연구결과에 대한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디언지에 보도딘 기사가 며칠 동안 회자되는 동안 영국왕립협회가 이 소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그들은 1999년 6월 새로운 발표를 하는데 푸즈타이의 연구가 많은 면에서 결함이 있기에
아무런 결론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저명한 기관에서 발표한 이 같은 성명은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가 강한 압박을 가한 결과였다고 폭로된다.
블레어 정부는 실제로 반 GMO매체에 맞서는 프로파간다 활동을 펼치기 위해
생명공학 프레젠테이션그룹이라는 비밀단체 또한 결성한다.
이 단체는 영국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냈다.
영국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푸즈타이 논쟁은 막대한 이윤을 낳는
GMO애그리비즈니스 사업의 미래에 하나도 이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결단을 내린 블레어의 정책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게서 받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클린턴의 전화통화를 받고 앞으로 GMO사업이 수십억 달러는 벌어들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유망산업이라는 확신하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또한 클린턴이 푸즈타이 문제를 블레어에게 이 문제를 직접 이야기한 배경에는
그가 몬산토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였다고 한다.
그러자 블레어가 로웨트 연구소의 소장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고
24시간도 되지 않아 푸즈타이 박사는 해고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GMO곡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GMO프로젝트를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위협적이었던 푸즈타이의 연구사례는
연구자료를 직접 조작하고 억압하기 위해 노력한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로웨트 연구소에서 실시한 푸즈타이의 연구는 영국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구였다.
블레어 정부는 이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같은 블레어 정부의 움직임은 옆 동네 미국이 보여주는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보여준 GMO운동은 그 정책적 뿌리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초의 족적은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기간과 닉슨의 재임기간에 발견된다.
그들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식량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를 고안하였고
이 아이디어는 미국의 광범위한 정책원리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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