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월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미국은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베트남전쟁의 참패를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수만 명의 학생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으며 병사들 사이에선 마약중독이 만연해 있었으며
전장에서 지휘관에게 수류탄을 던지거나 상사를 살해하는 모반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수천 명의 미국 젊은이들은 시체 운반용 부대에 실려 귀향하고 있었다.
미국 경제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던 시기였다.
독보적인 우위를 구가하던 미국의 지위가 새롭게 떠오르는 서유럽국가들과
일본의 부상 탓에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산업은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동시에 심각한 경기 후퇴에 직면하고 있었기에
미국 은행들은 돈을 대출해줄 만한 채산성 있는 영역을 찾아 해외에서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장차 보게 될 세계화 현상의 전조인 미국기업 다국적화의 시발점이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던 미국의 기득권세력과 부유한 가문들은 이윤을 낼 만한
새로운 영역을 발 벗고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식량이다.
1973년 국무장관이자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석유지정학과 함께
식량을 외교정책의 핵심사항으로 부각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한 언론인에게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미국의 식량정책이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73년의 세계 식량위기였다.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 세계유가가 400퍼센트 인상된 시기와 동일하다.
1974년 유엔은 로마에서 유엔 세계식량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는 미국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는데 주요 토픽은 세계가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는 동시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냐는 것이었다.
이 시기 일어난 식량위기는 세계최대의 식량생산국인 미국이 세계식량공급과
식량가격에 미치는 지정학적인 힘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미국의 민간 곡물무역회사들과 미국 정부가 새롭게 손을 잡은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연대는 추후 유전자 혁명의 발판이 된다.
이와 같은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록펠러 형제들은 그들의 사업영역을 석유에서 농업으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녹색혁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 그들은 하버드 대학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돈을 대고 있었는데
소수 민간기업이 세계 식량생산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부구조를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농민중심의 농업과 차별화하기 위해 애그리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냈다.
애그리비즈니스는 녹색혁명과 서로 연관이 되어 있었다.
둘 다 록펠러재단이 관여하는 거대전략의 일환이었으며 이는 추후 유전자조작 식품 혁명으로 이어진다.
그로부터 40년에 걸쳐 애그리비즈니스는 식량업계를 모조리 장악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핵심 아이디어는 미국의 식량생산에 수직적 통합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말 데이비드 록펠러가 지지한 카터가 대통령이 되자 미국의 다국적기업은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신중하게 관리해 온 각종 규제 및 소비자 보호법에 반격을 가하고
새로이 수직적 통합에 나섰다.
수직적 통합은 경제적 효율이나 규모의 경제라는 수식어로 선전되었다.
독점에 대한 규제 또한 완화되면서 미국의 식량공급은 다시 한번
독점적인 소수 애그리비즈니스 업체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이는 1920년대까지 성행하던 미국의 5대 기업들의 식량생산 독점행위와 동일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농업은 달라지고 집중되었다.
자립적이던 소농은 농지에서 내쫓겼으며 공장농 또는 기업농이라고 알려진
좀 더 효율적인 거대 농업기업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땅을 지키고 있던 이들도 대개 계약농으로 전락해 거대 애그리비즈니스 아래 통합되어 버린다.
소농들이 사라지고 미국의 식량생산이 거대 애그리비즈니스 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초에는 공장형 가축생산이 시작되었다.
자동차업계가 조립라인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하듯이 거대기업들은 대량생산기술과 공장식 효율성을 도입했다.
돼지, 소, 닭은 더 이상 들판이나 농장에서 길러지지 않았다.
밀집사육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최소한의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가축을 몰아넣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장식으로 길러진 돼지들은 태어나서 도살되기까지
비좁은 우리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으며 단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또한 인위적으로 가둬 키우면 돼지들은 빗장을 깨물거나 무감각하게 씹는 등 광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미 농무부는 밀집사육법으로 가두어 기르는 가축의 10%가 스트레스 질병 상해 탓에 죽으며
닭 같은 가금류의 경우 그 비율이 28%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공장형 농업은 국회의원들의 호의적인 운동 덕에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통상적인 법률의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공장형 농업의 또 다른 폐해로서 엄청난 가축 폐기물이 방출되게 된다.
인간의 13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폐기물을 배출하게 되는데
한 해에만 쏟아져 나오는 분량이 무려 2조 7000억 파운드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축폐기물은 유수지로 흘러들어 가 물고기나 다른 해양생물이 떼죽음을 당하고
병이 퍼졌으며 지역의 식수원을 오염시켰다.
더욱이 가축폐기물에는 살모넬라, 대장균, 크립토스포리디움, 분변성대장균 같은 병원균이 들어 있었는데
이는 인간에 세 40가지가 넘는 병을 옮길 수 있다.
이처럼 단위면적당 최대의 가축을 몰아넣는 공장형 축산은
엄청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했다.
가축 폐기물뿐만 아니라 약품 소비도 문제였다.
한 군데 몰아 넣어 사육하는 상황에서 질병을 억제하기 위해 항생제를 써야 했는데
이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도 문제였지만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악성 박테리아 또한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항생제를 퍼부어 키운 쇠고기를 섭취한 사람들은 또 다른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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