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카네기의 카네기협회는 우생학기록국을 설립했다.
평범한 미국인의 혈통에 관한 자료를 수백만 건 수집하여 색인 카드에 기록해 두었는데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혈통을 깡그리 제거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후원자들은 자기들 눈에 비적자로 보이는 이들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우생학 프로젝트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것이 록펠러 재단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다양한 우생학과 인구 프로젝트에 수십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1920년대 초 미국우생학회에서 가장 저명한 회원은 폴 보몬 포페 노였다.
그는 응용우생학이라는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종족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을
매우 주요한 가치로 밝히면서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처형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은 일부 선택된 독자군을 겨냥한 것으로 어떤 점에서간 열등한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도태시킨다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심지어 1927년 미국 대법원은 버크 대벨 사건에서
버지니아 주가 시행한 강제단종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명백한 부적격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가만히 기다리거나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사회가 나서서 더 이상 후세를 퍼뜨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저지하는 편이 낫다며 저능아는 3세대로 족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때 내려진 판결을 계기로 수천 명의 미국 시민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거나
모자란 인간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특히나 우생학의 선봉자로 여겨진다.
1909년에 통과된 캘리포니아 주 우생학법에 따라 정신박약아를 비롯한 정신과 환자들은
퇴원 전에 예외 없이 불임시술을 받았으며 범죄의 종류를 막론하고 세 차례 이상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 역시
자문의사에 재량에 따라 거세시술을 당했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에서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불구자가 되었는데
대부분이 어쩌다가 매춘의 길로 접어든 불량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우생학은 인구과잉에 대한 존 D록펠러 3세의 강박관념에 기반한 이론체제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맬서스가 1789년에 쓴 논문 인구원칙에 관한 에세이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식량공급은 오직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할 따름인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과잉인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간헐적으로 기근과 사망이 이어질 것이라 주장에 근거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유럽과 북미에서는 인구폭발과 함께
식량공급의 증가가 뒤 따르면서 맬서스의 이론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록펠러와 미국의 재벌가들은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멜서스 이론을 다시금 받아들인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상보다 원인을 다뤄야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으로서 못사는 인종들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증식하려는 경향성을 강하게 띤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억제하는 일에 주력한다.
그리고 이는 우생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우생학의 후원자들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우생학은 열등한 존재의 수를 줄임으로써
인간종족의 질을 개선하려는 목적의 학문이다.
그는 록펠러재단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우생학에 투입했으며
이는 1920년대에 독일 우생학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당시 에른스트 뤼딘이라는 의사는 히틀러가 추진한 우생학의 대표적인 주창자였다.
록펠러재단에서 자금을 받았던 뤼딘은 1932년 세계우생학연합의 회장으로 임명된다.
이 단체는 사회에 부담을 주는 이들을 미리 처형하거나 거세하자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부적격자를 둔 확대가족은 가족구성원 전원이 불임시술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히틀러는 미국 우생학의 열혈 팬으로서 다양한 인종집단에 대한
인류학 실험이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이루어진다.
1952년 뉴욕에선 인구협회라는 단체 또한 설립되었는데
인구과잉의 위험과 관련주제에 대한 연구를 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이들에게 지난 수십 년 동안 강제 불임시술을 시행한 노력이
사회전반의 유전혈통을 향상 시키는데 역부족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뒤 25년 동안 이 협회는 인구감소를 위해 1억 73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음으로써 우생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구억제 또는 가족계획, 인종적 순수성, 열성인자 근절 같은 단어가
과거의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전후에도 그들이 추구하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 문제를 개발도상국 전체로 시야를 넓힌다.
인구협회의 초대회장으로서 오즈번이라는 사람이 당선되는데
그는 적절한 접근법을 통해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출산을 억제하게 만들도록 지시한다.
피임약의 개발 또한 그가 주력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백인이 아닌 3세계 시민들에 훨씬 더 적극적인 인종차별을 적용했다.
오즈번은 악명 높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파이어니어기금의 회장직을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맡기도 했는데
이 기금은 흑인이 백인보다 유전적으로 지능이 더 낮다고 믿는 과학적 연구를 지원해 왔다.
또한 그들은 지능지수가 100이 안 되는 사람은 예외 없이 강제단종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존 D록펠러 3세는 인구협회의 이사장으로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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