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GATT가 창설된 뒤 미국 정부는 농업을 세계무역협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어떤 보편적인 국제규정이 미국 시장을 해외 식량수입에 개방하도록 요구하거나
미국 농업의 경쟁력에 해를 끼칠까봐 두려웠던 탓이다.
그런데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냉전의 지정학과 관련하여 우선적인 국가전략으로 떠올랐다.
1986년9월 미국 애그리비즈니스는 새 국제무역기구인 GATT 우루과이라운드를 적극 지원한다.
우루과이라운드는 과거 GATT의 여러 무역라운드들과 달리 농업무역에 최우선권을 두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애그리비즈니스는 레이건 행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아래
대규모 국제무역을 시작할수 있을 만큼 탄탄 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30년 동안 공들인 작업의 결정판이었다.
특히나 미국이 우루과이라운드의 농업부문에서 주력한 것은 각국기 농업수출에 부과하는
보조금을 중단하도록 요구한 것이었다.
이는 유럽경제공동체의 농업정책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 과정을 농업무역의 자율화라고 불렀다.
1995년에는 이 기구의 영향력을 더욱더 발전시킨 WTO를 설립한다.
이 기구각 각국의 법률을 초월하는 초국적인 조직으로 설계 되었고
각국 중앙정부보다 상위에 있는 조직이었다.
이들은 세계적인 자유무역의 이행자이자 세계무역을 위한 경찰로서 창설되었는데
무엇보다 세계적인 애그리비즈니스 기업의 이해를 사정없이 밀어붙이는데 활용된다.
새로운 WTO가 기존의 GATT와 다른점이 있다면 회원국간의 협의된 무역규정을
반대쪽에서 위반했을시 징벌을 가할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규정을 위반한 회원국에는 심한 벌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경제 제재조치를 부과할 수 있었다.
이는 다양한 국가적 장벽을 제거하도록 밀어 붙이고 유전자조작 곡물을 널리 확산할수 있도록 돕는다.
WTO규정은 4개국 그룹인 미국 캐나타 일본 EU가 결정했다.
그들은 비밀리에 만나 134개 회원국에 적용되는 정책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애그리비즈니스 기업들의 로비활동으로 이루어진다.
WTO는 사실상 미국의 애그리비즈니스가 정의한 조건 아래 세계농업을 세계화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리고 WTO규정은 식량상품의 세계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법적 정치적인 길을 열어주었다.
이 시장은 마치 1세기 전 스탠더드오일 그룹을 중심으로 한 석유카르텔이 창출한 석유시장과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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