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침략할 때까지 베트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워싱턴 관리들의 반복된 진술과는 달리
미국은 1950년대 이후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 지속적으로 개입해 왔다.
초기의 조치는 1950년대 봄과 여름에 베트남에 주둔하는 프랑스 군에
대규모 군사장비를 보내기로 결정한 사실이다.
이유는 아시아에 또 하나의 공산 정부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프랑스에게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게 된 명분을 완성 시키기 된다.
사실 베트남독립동맹 지도자 호찌민은 1945~1946년부터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여덟 차례나 보낸다.
그는 편지에서 세계평화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정복 시도로 위태롭게 되고 있다고 말했으며
공정한 해결을 중재하기 위해 UN이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한다.
미국은 이 편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확답해주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프랑스의 편에 선다.
1950년대 미국의 입장은 호찌민이 "순수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국제 공산주의의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프랑스가 종전협상을 위해 제안된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국가 건설 허용을 미국은 완강하게 반대한다.
오히려 미국은 막대한 규모의 경제 및 군사원조를 중지하겠다고 프랑스를 위협했으며
프랑스 공군을 돕기 위해 추가로 1만 6000명의 병력을 공수한다.
1954년 4월 프랑스군의 패배가 명백해지고 제네바협상이 예정되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인도차이나에서 완전한 군사적 승리를 얻는 것을 미국의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며
협상을 통한 해결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1954년 7월 제네바회담으로 베트남에서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미국 혼자만이 협상타결이 불만 스럽다는 이유로 최종선언에 조인하기를 거절한다.
동시에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경제적 보이콧을 시작했으며 남북을 하나로 통일시킬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가 될수 있는 선거를 취소시킨다.
이유는 남베트남 대통령 응고 딘 디엠의 단호한 거절이 있었는데 그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선거가 실시되면 호치민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고 한다.
선거에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이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가능한 한 오래 선거를 연기하려 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남베트남 대통령 디엠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한다.
취소된 선거로 나라는 분단 되었으며 디엠은 부여받은 권한을 이용해 남베트남의 통치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으며 1963년 11월 1일 일부 군장성들이
그를 권좌에서 내쫓고 항복한 그와 그의 형제를 살해한다.
타임지는 이 쿠데타가 미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미정보국에 인지하에 계획되었다고 보도한다.
1964년 8월에는 베트남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통킹만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사건은 북베트남 해안에 정박 중이던 2척의 미국 구축함이 공격을 받은 일이다.
이 날조된 사건은 대규모의 미군을 베트남전에 참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6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은 미 공군의 하노이, 하이퐁 유류고 폭격으로 크게 확산된다.
1966년 7월 17일 북베트남은 전 국민과 군대에 비상 동원령을 선포하였고,
중국은 각종 전쟁 물자와 무기, 후방 기지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엄청난 물자와 장비가 전달되기 시작한다.
이 전쟁은 결국 민간인 195,000–430,000명 사망, 군인 220,357명–313,000명 사망,
그리고 1,170,000명의 총부상자를 기록한다.
1973년 1월 파리에서 미국은 베트남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합의에 조인한다.
미국이 합의한 원칙 가운데 주요한 두 원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미정부가 아무런 정치적 조건 없이
북베트남 전후복구를 지원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후복구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5년동안 32억 5000만 달러의 원조금을 자세한 협의를 통해 변경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협의내용과 반대로 혜택을 받은 베트남사람은 찾아볼수도 없었으며
미국은 베트남에 통상과 원조완전금지 조치를 1994년까지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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