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부터 캄보디아는 미 국무부장관과 CIA국장에 의해
서방과 손을 잡고 공산주의에 대항하도록 압박을 받는다.
그들은 캄보디아를 동남아조약기구(SEATO)에 가입시키려 했으나
시아누크 공은 이를 거절하고 SEATO를 비판한다.
이 후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던 태국과 남베트남이 갑자기 국경을 폐쇄하는 가혹한 조치를 취한다.
추후에도 반복된 군사도발로 위협이 고조 되기 시작하였는데 태국 군대가 캄보디아 영토를 침입했으며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남베트남 비정규군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시아누크 공은 이러한 군사 행동이 자신을 타도하기 위한 사전조치처럼 인식 하였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결심을 한다.
이러한 외교술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경제원조 단절을 철회하고 태국과 남베트남의 국경을 다시 개방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오히려 시나누크 공은 SEATO를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소련 및 폴란드와 관계를 수립 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다.
1958년 CIA와 미 특전대원에 의해 자금 지원을 받은 병력들이 대규모 음모단의 일원으로
캄보디아에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시아누크는 중국과 프랑스 정보기관을 통해서 이 계획을 알게되고
1959년 2월 음모론자들은 체포되거나 도망친다.
수년 후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이에 관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음을 맹세코 장담하는데
그렇다면 대규모 음모단의 침투 계획을 기획한 사람이 누구 였는지 의문점이 남는다.
1963년 11월 캄보디아 국회는 시아누크의 제의로 미국으로부터 제공되는
군사 경제 기술 문화 분야의 모든 원조를 거절하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미국의 원조가 캄보디아의 관리들과 민간 기업인들을 타락하고 부패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1964년 미국은 베트콩 게릴라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캄보디아 마을들을 폭격하게 되는데
캄보디아는 미국의 영토침입 사례가 다시 발생할 경우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문제는 이따금식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캄보디아 침입도 계속되었기에
1960년대 말이 되자 곤경에 처한 캄보디아는 미국의 원조를 다시 받고 외교적 관계를 재 수립 하게 된다.
1969년 3월이 되자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새로 취임한 미 대통령 리차드 닉슨 아래 캄보디아 국경을 따라 대규모의 융단폭격 또한 가해진다.
14개월 동안 폭격기가 3630회나 출연하여 공습을 했으며 민간인 사상사 수도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은 캄보디아가 공산주의 베트남인들의 피난처로 사용되기 때문에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1970년 3월 시아누크는 그가 해외여행 중에 있을 때 그의 두 핵심장관에 의해 쿠데타로 축출당한다.
이 쿠데타에 미국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는 입증 되지 않으나
미국이 연루 되었음 을 가리키는 객관적인 상황과 증언들이 넘쳐 난다고 한다.
시아누크와 그의 세력이 더 이상의 장애물이 되지 않자 미국의 기동력이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미군은 남베트남과의 협조하에 베트콩 피신처 초토화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 끔찍한 캄보디아 대전쟁은 5년 동안 지속되는데
이에 분노한 캄보디아 공산주의 세력 크메르루주는 미국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1970년 4월 미국의 침략에 의한 제1차 전면전이 시작된다.
5월 말 미 공군의 폭격으로 수십개의 마을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캄보디아 난민들은 피난길에 오른다.
3년 동안 10만 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는데 1973년 1월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는 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캄보디아 폭격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는 크레르루즈의 집권을 막기 위한 최후의 필사적인 시도로 오히려 강화되고 있었다.
3월부터 5월까지 투하된 폭탄의 양은 두 배에 달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사라졌고 옛 캄보디아의 모습은 영원히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의회의 압력이 가중되자 8월이 되서야 폭격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200만 이상의 캄보디아 시민들이 집을 잃었다.
1973년 9월 고별 기자회견에서 캄보디아 주재 미대사는 캄보디아 전쟁을 일컬어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쓸데없는 전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5년 4월이 되자 크메르루즈는 성공적으로 프놈펜에 입성하는데
크메르루주는 이 불행한 나라에 훨씬 더 큰 불행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끼쳤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캄보디아 정부와 캄보디아의 베트남 동맹국에 대항한 군전투를 위해
크레르루즈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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