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1일
수정본, 2024년 9월 22일
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달러화로 표시된 부채는 미국이 주도한 모든 전쟁의 원동력이었으며
월가의 채권자들은 주요 주도자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나치 독일을 굳건히 지지했으며 바르바로사 작전과 소련 침공(1941년)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1932년 1월 4일, 영국 금융가 몬타규 노먼(영국 은행 총재), 아돌프 히틀러,
프란츠 폰 파펜(1932년 5월 몇 달 후 총리가 됨)간의 회동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 회동에서 NSDAP(나치당)의 자금 조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미국의 정책 결정자에 해당하는 덜레스 형제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역시나 덜레스 형제는 이에 대해 언급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년 후인 1933년 1월 14일, 아돌프 히틀러, 독일 금융가 남작 쿠르트 폰 슈뢰더, 총리 프란츠 폰 파펜,
히틀러의 경제 고문 빌헬름 케플러가 다시 한 번 회동을 가졌고,
이에 대한 결과 히틀러가 추진하던 프로그램은 전면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Y. Rubtsov-
1933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하자 월가의 흔적이 보여지는
대규모 민영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Hjalmar Schacht 박사는 1933년 3월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Reichsbank 총재로 재임명되었으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으로 초대되었습니다(1933년 5월).
“미국 대통령과 월가의 대형 은행가들과의 회동 이후 미국은 독일에 총 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대출을 할당했습니다.”[2023년 기준 237억 달러, PPP 추정치]
-Y. Rubtsov-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34년 4월, The Economist는 "군사 지출로 인해 재무 장관이
새로운 자원을 찾도록 강요받고 있다 "고 보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Deutsche Reichsbahn(독일 철도)의
민영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나치 정부는 또한 국유 조선 회사, 국유 인프라, 공공 시설을 매각했습니다.
이는 나치-신자유주의 성향의 민영화 프로그램으로서 독일 월가 채권자들과 협상되었습니다.
도이체은행과 드레스덴은행을 포함한 몇몇 주요 은행 기관들도 민영화되었습니다.
"[나치당 정부는] 1930년대 중반에 여러 국유 기업의 공공 소유권을 매각했습니다.
이 기업들은 철강, 광업, 은행, 지방 공공 서비스, 조선소, 선박 노선, 철도 등 광범위한 분야에 속했습니다.
또한 1930년대 이전에 정부에서 생산했던 일부 공공 서비스, 특히 사회 및 노동 관련 서비스의 제공은
주로 당 내부 조직을 통해 민간 부문으로 이전되었습니다."
-Germa Bel(바르셀로나 대학교)-
민영화 프로그램에서 얻은 수익금은 미지급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되는 동시에
그 당시 호황을 누리던 나치 독일 군산복합체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를 포함한 수많은 미국 대기업이 나치 독일의 무기 산업에 투자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는 모두 1939년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독일 자동차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독일군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업체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독일 자회사의 운영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미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는 GM과 Ford의 미국 관리자들이 루즈벨트 행정부가 자국 공장에서
군수 생산을 늘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독일 공장을 군수 생산으로 전환해 버렸습니다.
-워싱턴 포스트(1998년 11월 30일)-
주목할만한 점은 한 이름 있는 미국 가문이 나치를 통해 재산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
프레스콧 부시(조지 W. 부시의 할아버지)는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 앤 컴퍼니의 파트너이자
유니언 뱅킹 코퍼레이션의 이사였으며, 독일의 군수 산업에 관여한 기업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부시 가문과 나치 독일의 전시 경제의 연관성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독일의 철강 재벌 프리츠 티센의 증언을 통해 처음 드러났습니다 .
티센은 프레스콧 부시의 파트너였습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범 용의자에 대한
가장 길고도 무의미한 심문 작업이 독일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철강 재벌 프리츠 티센(나치 전쟁 기계의 차가운 심장이었던 철강 회사 설립자)은
미국과 영국의 합동 심문팀과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누었습니다.
문제는 연합군 [뉘른베르크] 조사관들이 티센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티센은 그의 가족이 비밀리에 은행체인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 은행 계좌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자신의 나치 자산을 이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은행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자신의 은행을 거쳐 뉴욕시에 있는
미국인 친구인 프레스콧 부시와 허버트 워커에게 소유권 문서(주식, 채권, 증서, 신탁)를
이전하는 것뿐 이었습니다.
-존 로프터스(2002년 9월)-
존 로프터스는 닉슨 행정부 시절 미국 법무부에서 나치 전범을 담당한 검사였습니다.
미국 국민은 부시 가문과 나치 독일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은 주류 언론에 의해 신중하게 은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4년 9월, The Guardian은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조지 부시의 할아버지이자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고(故) 프레스콧 부시는 나치 독일의 재정 지원자들과
관계를 맺어 이익을 얻은 여러 회사의 이사이자 주주였습니다. …
1942년 적과의 무역법에 따라 그의 회사 자산이 압류될 때까지 계속된 그의 사업 거래는 60년이 지난 후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던 두 명의 전 노예 노동자가 부시 가족을 상대로 독일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조지 부시의 선거 전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프레스콧 부시는 1950년에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1952년에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63년 1월까지 그 직위를 지켰습니다.
부시 가문이 나치즘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시니어)와 조지 W. 부시가
정계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 했으며, 부시 시니어가 CIA에 근무한 사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러한 사실에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존 뷰캐넌( New Hampshire Gazette , 2003년 10월 10일)에 따르면
"미국 언론이 60년간 무시하고 부인한 끝에 국립문서기록보관소와 의회도서관에서
새로이 발견된 정부 문서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는
1926년부터 1942년까지 나치 전쟁의 재정 설계자 및 미국의 은행 담당자들과 사업 파트너였으며
의회가 부시와 그의 파트너들에게 공격적인 조치를 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 재부무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와 그의 동료들이 독일 산업가 프리츠 티센(Fritz Thyssen)과의
재정적 동맹을 숨기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티센은 철강 및 석탄 재벌로, 1920년대 중반부터 민주주의 원칙과 독일법을 전복하여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위해 개인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나아가 기밀이 해제된 기록에 따르면 부시와 미국의 상징인 W. 에이버럴 해리먼(W. Averell Harriman)의
남동생인 E. 롤랜드 해리먼(E. Roland Harriman)과 부시 대통령의 외할아버지인
조지 허버트 워커(George Herbert Walker)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이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이후
거의 1년 동안 이 독일 산업 재벌과의 거래를 계속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레스콧 부시의 회사 자산, 즉 유니언 뱅킹 코퍼레이션은 1942년 적성국과의 무역법에 따라 압류되었지만,
그가 기소되지는 않았습니다.
"1952년 프레스콧 부시는 미국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그의 과거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제브 부시, 조지 W. 부시가 수행한 정치 캠페인 기간 동안에도
부시-나치 관계에 대한 미국 언론 보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2000년 11월 사라소타 헤럴드 트리뷴에 실린 관련 없는 기사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과
2001년 보스턴 글로브에 실린 간략하지만 부정확한 설명이 예외입니다."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이전까지 월가는 독일과 무역을 했습니다.
진주만 공습(1941-1945) 이후 스탠다드 오일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등 소위 중립국을 통해
나치 독일에 석유를 판매하는 거래를 지속하였습니다.
뉴저지의 Standard Oil( John D. Rockefeller and Associates 소유)이 나치 독일에
석유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소련을 침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자유, 정의의 편에서 싸운 '십자군 전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1944년 6월에 서유럽을 해방했을 때, 말하지 않은 진실은 미국 기업들이
나치 독일과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뉴저지의 Standard Oil(오늘날의 Exxon)은 독일의 신탁 IG Farben과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켰습니다.
1930년대 초까지 Du Pont, Union Carbide, Westinghouse, General Electric, Gilette, Goodrich,
Singer, Eastman Kodak, Coca-Cola, IBM, ITT를 포함하여 약 20개에 해당하는 미국 기업의 엘리트들이
독일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미국 로펌, 투자회사, 은행들이 미국의 독일 투자 공세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유명한 월가 로펌인 설리번앤크롬웰과 은행인 JP모건, 딜런, 리드앤컴퍼니,
그리고 브라운 브라더스 앤 해리먼이 소유한 유니언뱅크 오브 뉴욕이 있습니다.
-자크 포웰스-
Michel Chossudovsky , 2023년 11월 21일, 업데이트, 2024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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