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란(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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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란(1953)

Global Capitalism

by Paradise Guy 2024. 6. 1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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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상 모사데그를 제거하자는 주장은 영국에서 비롯된다. 

왜냐면 이 나이 많은 이란 지도자가 이란의 유일한 오일회사인 영국소유 영국-이란오일회사를 

국유화시켰기 때문이다. 

 

1951년 5월 국유화법안은 효력이 발생하였고 이란 의회와 국민은 모사데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영국은 모사데그의 조치가 달가울 리 없었다. 

모사데그 정부는 영국을 달래기 위해 국유화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운영수익의 25%를 떼어주고 

영국종업원의 일자리 보장과 어떠한 외부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자국오일판매를 제안한다. 

그러나 영국은 이들 중 어느 것도 받아 들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일회사를 되찾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은 해군을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벌였으며 

경제봉쇄와 불매운동을 벌이고 마침내 이란자산 동결조치를 취한다. 

이로 인해 이란의 오일 수출과 외국과의 거래가 사실상 정지된다. 

영국의 이란 경제 목조이기 시도는 추가로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받게 된다.

 

1952년 영국의 처칠정부는 CIA의 실질적 중동 책임자 루스벨트에게 접근한다. 

이 당시 이란의 어린 국왕은 모사데그와 이란의 정치 상황에 의해서 단지 형식적인 지위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권력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된 상태였고 

모사데그의 높은 지지도 때문에 그에 의견에 공개적으로 반대조차 할 수 없었다. 

루스벨트의 선동과 실질적인 행동은 권력투쟁에 있어서 국왕이 필요할 경우 

어떠한 군사적 정치적 지원도 제공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준다. 

이란 국왕은 이에 따라 모사데그를 해임하게 되는데 그는 사임하지 않고 

이에 맞서 국왕이 외국 불순분자들의 사주를 받아 쿠데타를 시도했다며 저항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국왕은 바그다드를 거쳐 로마로 피신하게 된다. 

이에 맞서 1953년 8월 루스벨트가 선동한 이란인 앞잡이들은 테헤란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기 시작한다.

미 대사관 금고에 넣어둔 수백만 달러 가운데 약간만을 사용하면서도 

그들을 폭도로 매수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루스벨트는 이들을 '매우 유능한 전문 조직원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시위대를 끌어들였으며 시위대 중 일부는 정부청사와 정당사무실까지 습격한다. 

국왕이 모사데그를 해임하고 새 수상이 임명되었으며 국왕은 귀국 중이라는 발표가 나온다. 

사실 이것은 루스벨트가 만들어낸 거짓말이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었다. 

이날 테헤란 거리와 모사데그의 집 앞에서 모사데그의 충성하는 군인들과 새로운 수상과 국왕을 지지하는 

군인들 사이에 9시간 동안이나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300명이 죽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결국엔 모사데그 지지 세력이 패퇴하게 된다. 

 

이후 25년 동안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자로서 확고한 자세를 견지한다. 

국왕은 자신의 나라를 미군과 미정보기관의 처분에 맡김으로써 소련을 향한 냉전시대 무기로 이용된다. 

쿠데타 발생 1년 후 오일회사에 대한 영국의 기업 소유권은 40%로 줄어들며 

나머지 40%는 미국의 오일회사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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