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개혁성향의 후앙 골라트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재직 중에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고 최저임금을 100퍼센트 인상시켰다.
의회와 군부는 반기지 않았다.
전임자와 달리 국내자본을 육성해야 된다고 강조한 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 점,
또 노동당 출신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1962년 경제계발 3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남미의 비핵화를 주도하는 한편,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확대하고
교육 세금 선거인단과 토지개혁 추진에 앞장섰다.
쿠데타는 1964년3월31일에 일어났고 CIA가 배후에 있었다.
케네디와 존슨행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남미의 중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영향을 준것은 맞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와 같이 본다면 그중 하나는 하나마이닝의 국유화이다.
재무부장관을 지낸 조지 험프리가 이 회사의 이사장 겸 명예회장이다.
후버 대통령의 아들로 국무부차관을 지낸 후버2세 또한 이 회사의 이사로 있었다.
세계은행 총재로 있던 존 매클로이는 자문위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IMF긴축재정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민족자본을 추진한 것도 문제였다.
미국정부는 골라트 정책에 딴지를 걸기 시작하고 기존에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승인도 보류되면서 경제위기로 번질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민족주의와 좌파성향의 관료를 배제하라는 요구를 골라트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쿠데타 준비에는 대략 2년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자금은 CIA가 제공했다.
당시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에서 열린 일부 군인과 노동조합의 과격시위가 핑곗거리였다.
정부가 강경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군대의 규율이 무너졌다고 비난했다.
좌파정권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군대가 동원된다.
미국은 재빨리 신임 정부를 인정하는 발표를 한다.
IMF와 세계은행은 그동안 중단했던 원조자금을 승인하고
군부는 답례로 이들이 비판하던 경제민족주의 정책을 모두 되돌린다.
군부독재는 1985년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로 남미에서 공산화가 아닌 민주주의 붕괴로 도미노 이론이 실현된다.
우루과이는 1969년 볼리비아는 1971년 칠레는 1973년 아르헨티나는 1976년
엘살바도르는 1980년 파나마는 1989년 페루는 1990년에 각각 군부독재로 돌아섰다.
칠레는 스페인점령지이자 잉카제국이 있었던 자리로 1818년에 독립했다.
민주주의는 1932년에 자리 잡았으며 1973년까지 지속된다.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좌파정당이 연합한 결과 선거에 이겼다.
그의 정책은 칠레식 사회주의로 요약된다.
구리산업의 국유화, 토지 재분배, 무상급식과 의료보험 개혁등이 주요 내용이다.
국유화를 전임대통령부터 시행됬으며 100%로 늘렸다.
석탄채굴사업도 이때 포함시켰다.
개혁 정책은 곧바로 반발을 불러왔으며 그를 지지해 준 정당은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재임 첫해의 성적은 아주 좋았다.
경제는 큰 폭으로 성장하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낮아졌다.
그러나 1972년부터 불어닥친 국제적 경기침체로 인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워낙 단일품목에 의존한 경제였고 국유화등에 따른 후유증이 있었다.
미국의 반격은 은밀하고 위대했다.
아옌대가 대통령에 당선되기전부터 방해공작이 진행된다.
CIA는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상당한 액수를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브라질과 비슷한 접근이었다.
1970년10월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다.
미국은 경제전쟁쪽으로 눈을 돌렸다.
닉슨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운송업계 165개 회사는 무한 파업을 선언하고 경제는 순식간에 마비된다.
프로파간다는 더 엄청난 규모였다.
지역방송에는 하루 20개이상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산되며
뉴스프로그램, 수천종의만화, 일간지, 광고등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칠레전화회사의 지분 7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었던 미국 ITT 회사를 통해서다.
연쇄파업과 각종시위등을 통해 혼란이 커지며 군부가 개입할 명분이 생기게 된다.
쿠데타가 시작한 날은 1973년9월11일이다 모든 라디오와 방송은 군부가 장악한 상태였다.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가운데 아옌데는 그곳에서 자살을 택했다.
혹독한 탄압이 뒤따랐으며 3년동안 무려 13만 명이 체포되고 죽거나 실종된 사람도 수천 명이 넘었다.
군부를 장악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는 1990년에 끝났다.
통치기간동안 8만 명 이상이 구속되고 고문당한 사람은 3만 명이 넘었으며
3200명 정도가 살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력은 잡은 직후 군부는 아옌데의 경제정책을 전부 뒤집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출신의 경제학자들이 정부로 초빙된다.
그들이 주도한것이 한국의 IMF시절 구조개혁조치와 거의 동일하다.
정부의 간섭배제,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자유화, 자율변동환율제, 노동 유연성 도입 등이다.
외국계투자자본이 유입되면서 금융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상당한 효과를 보는 듯했다.
1980년 외채위기로 환상은 무너졌으며 피노체트는 신자유주의를 주장했던
관료들을 퇴출시키고 상당수 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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