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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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의 원인

Global Capitalism

by Paradise Guy 2024. 6. 1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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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1950년 1월 방어선을 발표한다.

애치슨라인으로 알려진 이 선언에는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북한이 남침을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애치슨은 의회청문회를 통해 남한을 방어선에서 제외하는 결정과 한국전쟁은 우연의 일치하고 변호하였다.

북한이 오판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속내는 알 수 없다. 

단독정부 수립등을 감안했을 때 내전의 가능성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냉전은 한국전을 계기로 확산된다.

 

참고로 에치슨은 소련봉쇄를 구실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도록 트루먼을 설득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란과 터키 해협등에서 소련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했으며,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지원을 망설이던 의회를 설득하는 데에도 앞장선 인물이다.

그의 후임자는 포스트 델레스이며 동생은 CIA국장이다. 

뒤이어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쿠데타도 이들 형제의 흔적이 짙다.

윌터라페버는 도미노 이론자체가 에치슨의 기획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였다. 

 

애치슨라인이 발표된 후 얼마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이 시작된다. 

또한, 북한의 알 수 없는 서울주둔기간 또한 한국전쟁 최대의 미스터리로 알려져 있다. 

빠르게 진격했으면 전쟁은 쉽사리 끝날수도 있었겠지만 

알 수 없는 이유의 주둔 기간을 서울에서 가져감으로써 미군이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진격을 멈추라는 알 수 없는 소련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쟁은 장기화 됐으며 밀고 밀리는 접전 끝에 엄청난 인명피해를 기록한다. 

 

베트남 전쟁

통킹만에서 발생한 베트남 보트가 미구축함 공격 사건 후 1964년 미국은 베트남전을 공식 선포한다. 

우리는 통킹만사건으로 알고 있는데 이 한 번의 사건은 미국의 대규모파병과 전쟁 구실이 된다. 

 

사실 베트남 보트의 미 구축함 공격은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이라고 추후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은 전쟁의 명분을 위한 완전한 조작이었다. 

내부관련자들과 정부관료들이 이 사건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하자  

전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통킨만 사건은 실수였다고 뒤늦게 수습한다. 

그러나 미국은 또 한 번 전쟁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후였다. 

 

1966년 10월 미대통령 린든존슨은 소련이 베트남에 무기의 80%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의 무역 금지령을 철폐한다. 

이어 록펠러 측은 베트남에 무기를 공급해 온 소련의 군수공장들에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나 충돌하는 양측에 동시 자금의 조달은 동전의 한 면 일 뿐이었다. 

1985년 베트남전 교전규범이 기밀 해제되면서 베트남전에서 미군에게 금지된 항목들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항목들이 발견된다.

"베트남의 대공미사일시스템이 완전히 가동하기 전까지 폭격은 금지된다" 

"베트콩이 라오스나 캄보디아 국경을 넘으면 공격할 수 없다" 

이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항목은

"중요한 전략적 목표물은 상급지휘관의 명령 없이 공격할 수 없다"문구이다. 

더군다나 미군의 제한사항은 베트콩에게 넘어갔고 베트콩은 이것을 활용하여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베트남전이 왜 그렇게 길게 지속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베트남전의 진정한 목적은 승리보다 이를 지속시키는 것에 있었다. 

1955년 ~ 1975년 사이에 벌어진 이 장기 전쟁은 결국 5만 8천 명의 미군사상자와

3백만 명의 베트남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Comment: 이 당시 한국 군인들도 미국의 경제지원을 담보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주요 특징으로 매우 용감하며 멘탈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공교육을 통해 받은 적이 있음. 이러한 루머가 나오게 된 배경이라면 게으르고 나태한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적당히 총만 쏘다가 퇴각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쉽게 퇴각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신력이 매우 강한 민족이었다는 후문임. 국내에서 교육받은 대로 그런 줄 알고 살아왔지만 실상은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해 적당한 거리두기 정책이 서로 간에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이 베트남전의 진실임.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이 고생을 사서 하는 한국인들의 민족성에는 이러한 정신교육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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