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1차, 2차 세계대전에 전쟁광 아메리카가 개입하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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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차, 2차 세계대전에 전쟁광 아메리카가 개입하게 된 배경

Global Capitalism

by Paradise Guy 2024. 6. 1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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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이익과 지배권을 얻기 위해 전쟁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가 시작된 1913년 이후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발발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3개의 전쟁은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발발했다. 

미국인들은 전쟁과 연관이 없길 바랐고 대통령 윌슨은 공개적으로 중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비밀리에 전쟁에 뛰어들 수 있을만한 명분을 찾고 있었다. 

국무장관 윌리엄 재닝스의 기록에 따르면 "엄청난 이익 창출이 가능한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거대한 금융자본가들은 세계대전 개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금융가들에게 전쟁은 수지타산이 가장 높은 사업이다.

전쟁이 나면 국가는 더 많은 돈을 이자와 함께 연방준비은행에서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에드워드 하우스 대령이라는 대통령의 수석고문이자 조언가가 있었는데 

그는 전쟁개입을 원하는 국제금융가들의 측근이었다. 

대통령고문 하우스 대령과 영국의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 경이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방안에 대한 대화가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독일 애들이 미국인들이 탄 배를 침몰시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인들은 한번만 충동질해도 알아서 전쟁에 뛰어들걸" 

 

결국 1915년5월7일 에드워드 그레이 경이 제안한 것처럼 

루시타니아호를 독일군 함선이 있는 독일영해에 고의로 흘려보낸다. 

예상대로 독일 어뢰의 공격을 받고 산적된 탄약이 폭발해 1200명이 죽는다. 

이미 독일군은 뉴욕타임즈를 통해 공격받을 위험이 큰 대형배에 승선할 경우 

이에 대한 피해를 각오하라는 경고를 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그들이 1차 세계전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은 결국 328000명의 미국인 희생자를 낳게 된다.

 

2차 세계대전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미국함대 폭격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루즈벨트가 사망한 뒤 의회의 기밀 기록과 문서들이 공개 되었는데

이 자료들은 진주만 폭격이 있기 며칠 전부터 세부사항 및 공습시각까지 샅샅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미 폭격이 일어나기 수 주전에 일본군의 공격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명백히 일본군을 도발했고 폭격받길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루스벨트의 전쟁 비서관 헨리 스팀슨은 1941년 11월 의사록에 루스벨트와의 다음의 대화내용을 기록했다. 

"문제는 어떻게 그들이 선제공격 하도록 조종하느냐 이다" 

"일본이 선제공격을 하도록 해서 그들이 침략했다고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진주만 공격을 이끌어내기 위해 루스벨트는 일본을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석유 공급을 전방위로 봉쇄하고, 일본의 적국인 중국에 공채를 발행하고, 영국에 군사지원을 하였다.

무엇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라면

루즈벨트가 1941년7월26일 대통령령을 발표해 미국내에 있는 일본의 자산을 동결한 일이다. 

이로써 미국과 일본의 무역은 사실상 중단된다. 

일본정부는 이 대통령령을 일본에 대한 도발행위로 간주했다. 

진주만 공격을 다섯달 앞둔 1941년7월19일 매직이라는 미정보국의 암호해독기술을 통해 

일본과의 전쟁이 코앞에 다다랐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또한 공격이 일어나기 2주전인 1941년11월26일 루즈벨트는 처칠에게서 진주만 공격이 임박 했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정보를 직접 전해들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진주만 함대의 대공방어 능력을 제거하는 식으로 일본의 공격을 오히려 유도한다.

결국 이 공격으로 인해 미국은 평범한 미국시민들을 저항없이 전쟁에 동원하게 되며 

루즈벨트가 간절히 원하던 2차세계대전 전쟁참전의 빌미가 되어주었다. 

1945년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도시 상공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허락하게 되는데 

이 사건은 두고두고 시비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트루먼은 일본이 항복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사태를 면밀히 주시한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소리이다. 

우선 그 당시 일본은 고립무원 이었고 경제적 으로도 급속도로 쇠락하고 있어 패전국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지친군사들이 떼거리로 탈영하고 있었으며 인명피해 없이 항복하도록 압박 하기에도 충분했다. 

훗날 기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사실 일본은 미국인들이 포츠담에 도착하기전에 

천황을 그대로 두게 해주는 조건으로 항복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가 있었다.

트루먼 또한 일본이 항복할 뜻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 원자폭탄투하를 정당화할 구실을 만들어내고자 이러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무시 해버린다.

 

원자폭탄투하의 주목적은 일본의 항복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을 전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소련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용도인 동시에 미국이 2차세계대전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진주만 공격이전 미국인 80%가 전쟁에 반대했다지만 이후 100만 미국인이 전쟁에 지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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