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보스 Great Reset 아젠다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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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다보스 Great Reset 아젠다의 기원

Global Capitalism

by Paradise Guy 2024. 5. 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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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Klaus Schwab의 Great Reset 아젠다에는

단 하나의 새롭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의제중 하나인 주주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Schwab가 창안한 것이 아니었다.

클라우스 슈왑(Klaus Schwab)은 글로벌 기술 관료적 의제, 유엔을 포함한 기업 권력과 정부의

통합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의 기원은 1970년대 초, 심지어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는 그저 아젠다를 이행하기 위한 홍보 대리인일 뿐이라고 알려진다.

다보스의 그레이트 리셋은 수십 년에 걸쳐 UN의 통제하에 발전해 온 글로벌 디스토피아 독재 정권을

향한 최신 업데이트된 청사진일 뿐이다. 

주도자는 데이비드 록펠러와 그의 제자 모리스 스트롱이었다.

1970년대 초, 당시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인 데이비드 록펠러보다

세계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은 찾기 힘들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데이비드 록펠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국제 집단은 

눈부시게 많은 엘리트 조직과 싱크탱크를 출범시켰다. 

리스트를 나열 하자면:

로마 클럽;

1001:  세계야생생물기금(WWF)과 연계된 자연 신탁(A Nature Trust);

스톡홀름 유엔 지구의 날 회의;

MIT가 작성한 연구, 성장의 한계;

삼각위원회 등이 있다.

로마 클럽

1968년 데이비드 록펠러는 아우렐리오 페체이, 알렉산더 킹과 함께 

신맬서스주의 싱크탱크인 로마클럽을 설립했다. 

아우렐리오 페체이는 이탈리아의 강력한 Agnelli 가문이 소유한 Fiat 자동차 회사의 고위 관리자였다. 

Fiat의 Gianni Agnelli는 David Rockefeller의 절친한 친구이자 

록펠러의 체이스 맨허튼 은행의 국제 자문위원회 위원이었다. 

Agnelli와 데이비드 록펠러는 1957년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Agnelli는 1973년 데이비드 록펠러의 삼각위원회 창립 멤버가 되었다. 

OECD 과학 프로그램 책임자인 알렉산더 킹은 NATO의 컨설턴트이기도 했다. 

 

1971년 로마 클럽은 심각한 결함이 있는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를 발표하였는데

이 보고서는 급속한 인구 증가와 석유와 같은 한정된 자원의 결합된 문제로 인해 현재 문명의 종말을 예측했다. 

보고서는 자원 소비에 큰 변화가 없다면 “인구와 산업 능력 모두 갑작스럽게 감소할 것”이라고 결론지으며

신맬서스주의 “People pollute” 운동을 시작하였다.

보고서는 MIT 컴퓨터 과학자 그룹의 거짓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작성 되었는데

세계 인구, 산업화, 오염, 식량 생산, 자원 고갈 등의 추세가 지금과 같이 변함없이 지속 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지구는 성장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때가 1971년이었다. 

1973년 Klaus Schwab는 세 번째 다보스 비즈니스 리더 회의에서 페체이를 초대하여 

기업 CEO들에게 성장의 한계를 제시했다.

1974년 로마클럽은 “지구에는 암이 있고 암은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며

세계는 인구 과잉, 식량 부족, 재생 불가능한 자원[석유-우리] 고갈, 환경 파괴, 잘못된 거버넌스 등 

전례 없이 복잡한 글로벌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세계 시스템은 구조 조정이 필요하며 

에너지, 식량 및 기타 위기를 해결하려면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태도 변화 또한 요구 되었는데 1974년 보고서인 "전환점에 있는 인류"에서

로마 클럽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국가와 지역 간의 상호의존성 증가는 독립성 감소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각자가 자신의 독립성을 일부 포기하거나 적어도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상호의존할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유한한 자원의 글로벌 배분과 새로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유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세계 발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UN Agenda 21, Agenda2030 및 2020 Davos Great Reset의 초기 공식화였다.

모리스 스트롱

1970년대 초 록펠러의 '제로 성장' 의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조직한 사람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오랜 친구이자 억만장자 석유 사업가인 모리스 스트롱이었다.

캐나다의 모리스 스트롱은 운송 차량, 석탄 발전소 및 농업에서 인간이 배출한 CO2가 

지구 온도 상승을 야기하여 지구 온난화 현상을 일으켰다는 과학적으로 결함이 있는 

이론을 제기한 초기 전파자 중 한 명이었다.

1972년 지구의 날 UN 스톡홀름 회의의 의장으로서 스트롱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와 생활 수준 저하의 아젠다를 홍보하였다.

스트롱은 그의 급진적인 생태학 아젠다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구의 유일한 희망은 산업화된 문명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닌가?” 

이것이 지금 세계적 펜데믹이라는 은폐 아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스트롱은 그의 경력과 재산을 석유개발을 통해 축적해 왔으므로 환경운동을 시행하기 위해

주요 UN이니셔티브의 지도자를 맡는다는 것은 정말 의외의 결과였다.

그는 1947년 18세라는 나이의 젊은 시절에 데이비드 록펠러를 만났고 

이 시점부터 그의 경력은 록펠러 가족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스트롱은 데이비드 록펠러와의 새로운 우정을 통해 유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유엔의 자금은 록펠러의 체이스 은행에 의해 충분히 편리하게 처리되었다. 

이는 스트롱이 배포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 모델의 전형이었다. 

이는 공공 정부의 민간 이익이었다. 

1960년대에 스트롱은 Power Corporation이라고 알려지는

거대한 몬트리올 에너지 대기업 및 석유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한 캐나다 조사 연구원에 따르면 Power Corporation은 선별된 캐나다 정치인의 캠페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치적 비자금으로도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구정상회담 1 과 리오 지구정상회담

1971년까지 스트롱은 뉴욕의 UN 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다가오는 지구의 날 회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유엔 인간 환경 회의(지구 정상 회담 I)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또한 그해 록펠러 재단의 이사로 지명되었다.

스톡홀름에서는 스트롱을 수장으로 하는 유엔 환경 계획(UNEP)이 창설되었다.

1989년까지 Strong은 UN 사무총장에 의해 1992년 UN 환경 및 개발 회의(UNCED)

(“리오 지구정상회담 2” )의 의장으로 지명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UN의 "지속 가능한 환경" 목표, 클라우스 슈왑의 Great Reset의 기초를 형성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의제 21"의 초안 작성은 물론

UN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창설을 감독하기도 했다.

다보스 WEF의 이사이기도 한 스트롱은 Schwab이 Rio Earth Summit의 핵심 고문으로 

활동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UN 리우 회의의 사무총장으로서 스트롱은 또한 알렉산더 킹이 저술한 

The First Global Revolution 보고서를 로마 클럽에 의뢰했다. 

이 보고서는 CO2 지구 온난화 주장이 단지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 고안된 계략일 뿐임을 인정했다.

“인류의 공동의 적은 인간입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기 위한 새로운 적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염, 지구 온난화의 위협, 물 부족, 기근 등이 적합하다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위험은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며,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적은 인류 그 자체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리우 대표인 팀 워스(Tim Wirth)도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지구온난화 이론이 틀려도 경제정책, 환경정책 측면에서는 옳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우 회의에서 스트롱은 CO2 및 기타 소위 온실가스 제거라는 자의적인 목표와 관련하여 정의된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조작적인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한다.

의제 21은 교황의 축복을 받아 2015년 9월 로마에서 17개의 "지속 가능한" 목표를 포함하는 

의제 2030이 되었다. 

기타 항목 중에선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토지는 그 독특한 성격과 인간 정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개인이 통제하고 

시장의 압력과 비효율성에 영향을 받는 일반 자산으로 취급될 수 없습니다. 

사유지 소유권은 또한 부의 축적과 집중을 위한 주요 도구이므로 사회적 불의에 기여합니다. 

사회 정의, 도시 재생 및 개발,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주거 및 건강한 조건 제공은 

'토지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에만 달성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유지 소유권은 소련 시대에 제공된 아이디어처럼 다보스 대 재설정의 핵심 부분인 

"사회 전체"를 위해 공적 소유권으로 바껴야 합니다.

1992년 리우에서 의장겸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Strong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많은 육류 섭취 , 대량의 냉동 식품 및 간편 식품 소비, 화석 연료 사용, 가전제품, 가정 및 직장 에어컨, 

교외 주택 등 부유한 중산층의 현재 생활 방식과 소비 패턴은 지속가능 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무렵 스트롱은 행성 멸종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 아래 선출되지 않은 인원들의 통제권을 가지고, 정부 기관과 기업 권력을 통합하여

새로운 글로벌 테크 파시즘이라는 패러다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유엔을 변화시키는 중심에 있었다. 

1997년에 스트롱은 지구 정상회담 이후 실행 계획인 글로벌 다양성 평가,

4차 산업 혁명의 출시를 위한 청사진, 지구상의 모든 자원 목록을 대상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혁명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감독했다. 

현재 스트롱은 Klaus Schwab와 Davos 세계 경제 포럼의 공동 의장이다. 

2015년 Strong의 죽음에 Davos 창립자 Klaus Schwab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포럼 창립 이래 나의 멘토이자 좋은 친구였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조언자이며 수년 동안 우리 재단 이사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이라크 석유를 위한 식량 부패 스캔들로 인해 UN에서 탈퇴하기 전 

스트롱은 로마 클럽의 회원, 아스펜 연구소 이사, 록펠러 재단 이사 및 로스차일드 재단 이사였다.  

스트롱은 또한 뉴욕 시의 성 요한 대성당에 위치한 Lucifer Trust(일명 Lucis Trust)

이해의 사원(Temple of Understanding)의 이사이기도 했다.

“이교 의식에는 축복을 위해 양과 소를 제단으로 데려가는 것이 포함됩니다. 

여기에서 부통령 앨 고어(Al Gore)가 설교를 했고, 

예배자들은 퇴비와 벌레가 담긴 그릇을 들고 제단으로 행진했습니다…” 

이것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벌레를 먹고 사유 재산을 갖지 말아야 된다는 Schwab가 주창한 

Great Reset 아젠다의 기원이다. 

의제는 어둡고 디스토피아적이며 수십억 명의 "보통 인간"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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