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1일,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당시 진행 중이던 EU 가입 논의를 전면 중단하고 친러 정책을 천명한 것에 반대하여
수도 키예프를 포함한 서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대적인 시위가 유로마이단 혁명의 시발점이다.
시위가 확대되면서 정부 역시 대규모의 경찰을 투입하여 더욱 과격하고 강압적으로 진압에 나섰다.
진압이 점점 과격해지자 무력충돌의 수위 또한 심각해졌으며 돌과 화염병 및 각목 또는
불꽃놀이용 폭죽(스틱처럼 생긴)을 달고 경찰들에게 발포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시위대는 경찰이 쏘는 최루탄에 맞서기 위해 방독면까지 쓰고 저항하였다.
2014년 2월 결국 정부 측이 총을 발포하였고 사망자가 생겨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민중들의 목적이 친러정책을 철회하는 요구에서
정권의 축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혁명으로 급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쿠데타 활동에 반대하는 반마이단 운동이 우크라이나 동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테러작전이라는 구실로 반마이단 반군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우크라이나 내의 지역 갈등은 훨씬 더 심각하게 고조되었다.
결국 야누코비치와 그 측근들이 키이우에서 러시아로 야반도주하면서 쿠데타는 성공하였으며
새로운 과도정권이 수립되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당시 촉발된 2014년 전쟁의 연장일 뿐이며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국민 절반이 마이단을 환영하지 않았고
반마이단 운동이 형성된 동남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이 문제에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 이전선거로 뽑힌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타도하고 반러친미정권에 권력을 넘겨준 이 사건은
사실 민주적이지도 않고 혁명도 아닌 고도의 지원을 받은 폭력쿠데타였다고 알려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1943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나치독일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집단을 이용하여
20만 명의 폴란드인을 노인과 여성 또는 어린아이에 관계없이 잔인하게 학살한다.
학살을 주도한 우크라이나인 우두머리가 스테판 반데라인데
아조프 연대가 추앙하고 깃발에 새기고 다니는 자이다.
우크라이나에 반러정권이 집권한 뒤 국가영웅으로 추서 되었다.
학살 주범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서우크라이나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원조이다.
동우크라이나 돈바스 주민과 서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반데라주의자의 반목의 기원에는
1943년의 대학살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외부인이 보기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와 러시아는 다 같은 슬라브 인종이지만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아리안 슬라브이고 러시아 슬라브족은 인간 말종으로서 멸족시켜야 하는 대상이다.
나치는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짐승으로 간주했는데
그 개념을 러시아 슬라브에 적용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수뇌부에서 활약하는 아조프연대는 네오나치 대원을 받아들이는 극우 민족주의 민병대이다.
이들은 폭력적 백인 우월주의자 또는 인종주의 집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하원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분류하고자 요청까지 받아들여진 상태이지만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젤렌스키 등에 의해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서방 미디어에서는 거의 삭제되어 나오지 않는 내용이 우크라이나의 극우 파시스트 문제이다.
전 세계에서 네오나치가 무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이기도하다.
무장한 나치가 거리의 정치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 세계 네오나치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2014년 마이단 혁명은 네오나치의 공간을 활짝 열어두는 계기가 됐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이 있었다.
나토 대사를 지냈고 현재 미국 국무부 차관인 빅토리아 눌런드가 핵심 고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군경을 대신해 미국이 조직한 국립경찰을 장악했고 국방군에도 정식 편입된 상태이다.
미국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이유로 나치집단의 뒷배가 되어 주었다.
국회의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며 10%를 차지하는 의원수에도 불과하고
우크라이나 정치시스템에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선거를 거치지 않고 지명된 인원도 여럿이다.
이들 민족주의자들은 친러분리주의자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서 왔으며
애국주의자라는 간판을 달고 저항운동을 이끌어 우크라이나의 권력구조 시민사회
그리고 선출된 정부 속으로 침투했다.
이들의 목표는 크게 글로벌 극우그룹의 연대를 확립하고 범 유럽 민족운동을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유럽이란 자신들을 중심으로 모든 민족운동을 통합해 순혈적인 백색 유럽을 건설하는 것이다.
글로벌 극우운동과 네트워크에서 우크라이나의 아조프연대의 활동은 탁월한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지에 퍼져있는데
각국정보기관에 의해 불법범죄단체 또는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감시받고 있지만
오직 우크라이나에서만 예외로 허용받고 있다.
아조프의 민간 조직들은 심지어 유아교육 자선 문화예술 및 다양한 분야에서도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들은 출판사와 타투숍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춘과 마약 밀매까지 손대며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했다.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는 금융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가의 비호 및 폭력단 조직에 더해 미국이라는 스폰서까지 등에 업은 이들은 국가 안의 국가가 되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아조프연대 본부에서 미국육군본부가 2008년에 편찬한 야전교범 및
미군만 사용하는 저격용 탄환도 다수 나왔기에
미국이 아조프를 지원하고 훈련시켰다는 점을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네오나치가 탱크와 포병대를 갖춘 나라이다.
초기 젤렌스키 정권은 리버럴 포퓰리스트 정권이었으나 점점 더 네오나치 세력과 협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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