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4월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대령들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 정부는 집권 하자마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검열, 체포, 구타 및 사형을 집행한다.
그 희생자는 집권 첫 1개월 동안 약 8000명에 달했다.
임시정부는 뒤이어 이 모든 결정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권력 탈취를 막기 위해서
실시되는 것이라 선언한다.
탄압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거침없이 진행되었으므로 9월경 몇몇 유럽국가들은
유럽인권위원회에 그리스를 고발하기까지 한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그리스에 대표자들을 파견하는데
이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비밀경찰과 헌병대가 앞장서서 계획적이고 상습적인 고문을 자행했다고 한다.
쿠데타는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 발생했는데
이 선거에서 자유주의 지도자 조지파판드레오우가 수상으로 재선 될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그를 축츨 하고자 하는 정치 공작에 따라
왕실, 그리스군, 그리스주둔 미군, CIA의 공동 노력에 힘입어 성공한다.
과거 UN직원이었던 필립 딘은 이때 워싱턴 대사로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게 된다.
딘이 전해준 이야기는 미국이 얼마나 그리스를 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었는지 잘 설명해 준다.
조지 파판드레오우의 반대자들이 가장 염려한 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버클리 대학교에서 경제학부 학장을 역임했고 내각에서 장관직을 맡았던 그는
새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또한 그는 냉전 속에서 그리스를 구해내고자 하는 개인적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공개적으로 그리스가 나토회원국으로 혹은 미국의 위성국으로 나토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반대자였다.
그리고 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기타 공산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게다가 미군과 정보기관이 자국에 파견되어 이 나라의 자유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리스군을 민주주의의 위협세력으로 보았으며
군에서 가장 독재적인 왕정주의적인 고급장교들을 숙청하고자 한다.
1964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오우가 장관에 임명되고 그는 세계가 기술산업국가를 위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다시 말해 정보기관은 미쳐 날뛰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정부가 명목상의 국가 지도자들도
어찌할 수 없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드레아스는 이 점이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는데 부딪히는 2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리스의 정보기관 KYP는 내전 과정에서 OSS, CIA에 의해서 창설되었고
이 기관의 수백명의 정보요원들은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다.
안드레아스는 KYP가 일상적으로 장관들의 대화를 도청하고
이 정보는 CIA에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안드레아스는 KYP의 최고위급 인물 둘 을 해임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로 채운다.
하지만 모든 장비는 미국 소유였고 CIA나 CIA의 감독을 받고 있는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관리되는
정보기관이었기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안드레아스의 내각 도청 금지명령에 자극을 받은 미 대사가 그를 방문하여 명령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였고
그는 떠나면서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다음 파판드레오우는 신임 KYP차장을 시켜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요구하지만 그는 더 많은 도청장치를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또한 안드레아스는 그리스 행정기관을 거치지 않고 CIA와 KYP에 자금을 직접 건네는 관행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시나 실패로 끝이 난다.
두 기관사이에 연락원 구실을 하던 조지 파파도풀로스라는 사람을
전출시키기까지 하였으나 그의 방출은 형식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면 KYP가 여전히 그의 명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 2월에는 군사쿠데타가 모의되고 있다는 CIA보고서를 논의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회의조차 열렸다고 한다.
4월에 집권한 5명의 장교팀 중 4명이 미군이나 CIA 그리스 지부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 파파도풀로스는 그 해 말 수상직을 맡게 된다.
쿠데타 당시 조지 파파도풀로스는 CIA 직원으로 15년 동안 일하고 있었으며
CIA간첩으로서 첫 번째 유럽 국가의 수상이 된 자였다.
이후 그리스 국민들에게 7년간의 고문활동이 시작되는데 그 수가 200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1969년 유럽인권위원회는 그리스 정부의 위법행위를 확인하고
유럽회의는 그리스에 대한 회원자격을 박탈할 준비를 한다.
반대로 미국은 그리스의 추방을 가결하지 못하도록 회원국들에게 적극적으로 외교적 압력을 가한다.
나중에 그리스는 유럽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추방되기 전에 스스로 탈퇴한다.
이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반공집단이 되며 미국을 위해
정부의 뒷받침과 온갖 시설 등을 제공해 주는 나라가 된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고문 대상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원회는 이제 여러분을 도울 수 없으며 누구에게 말해봐도 아무 소용없다
누구도 여러분을 도울수 없다."
또한 이들은 "고문자들은 처음부터 자신들 뒤에는 미국이 있으며
이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고 언급한다.
1973년 11월 그리스 권력 핵심층의 내분으로 결국 파파도풀로스가 축출되고
드미트리오스 이오안디니스 대령이 그를 대신한다.
그는 헌병대 사령관이자 고문 전문가로서 미국에서 훈련받은 CIA심복이었다.
8개월 후 이 정권은 키프로스 정부는 전복시키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이 문제로 터키가 키프로스를 침공하고 아테네에서 반란이 일어나 민간정부가 들어서며
그리스의 악몽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Comment: 정보기관이 미쳐 날 뛰며 보이지 않는 정부가 명목상의 국내 지도자들을 지배한다는 구절은 자본주의 속국 코리아를 보는 듯함.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호구라는 것이 진실이라는 점. 촛불시위도 한일월드컵 응원단도 다 정보기관이 자금지원해서 주동자를 만들고 티비 광고를 열심히 이행해야 벌어지는 사회현상이라는 결론임. 여기다가 해외언론들을 활용한 외국인들의 칭찬활동도 겸비되면 금상첨화라고 함. 글로벌 자본주의는 이러한 형태로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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