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이라크(1972~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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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이라크(1972~1975)

Global Capitalism

by Paradise Guy 2024. 7. 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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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5월 리차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문제 고문 헨리 키신저는

소련으로 날아가서 소련 대표자들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주요 목적은 중동의 긴장을 완화하고 전반적인 문제해결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귀국길에 테헤란에 들러 옛 친구인 이란 국왕을 만났다.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문제로 인해 다시 다년간의 분쟁에 휘말린 듯 했으며

이란 국왕은 자치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에게 무기 지원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전반적으로 이라크의 힘을 약화시키고 이들의 주의를 이란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는 의도였다.

 

쿠르드족은 미국을 신뢰하며 그들로부터 무기를 제공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심지어 쿠르드족 지도자 바르자니는 "자신은 미국외에는 기타 어떤 국가도 신뢰하지 않는다"

고 자주 언급 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CIA는 1600만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쿠르드 반군에게 제공한다.

 

쿠르드족은 독특한 민족이었다. 

이들은 회교도들 이었으나 대부분의 이라크인들과 달랐으며 아랍인도 아니었다 

이 민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및 시리아에 흩어져 살고있는 민족이었다 

수십년동안 이라크계 쿠르드족은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와 간헐적으로 전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은 이들의 자치정부수립에 찬성하지 않는 입장 이었으며 

교착상태가 자신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교착상태는 쿠르드족의 지속적인 저항운동으로 이라크를 본질적으로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1974년에는 소련의 중재로 이라크 정부가 쿠르드족에게 제한적인 자치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으나 쿠르드족은 이란과 미국의 충고로 거절한다. 

 

1975년 이라크는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에 놀란 쿠르드족은 CIA에 미정부 기관이 개입해달라는 필사적인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다. 

불행하게도 쿠르드족은 CIA나 키신저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으며 

그 결과 무수한 쿠르드족 군인들과 지도자들이 이라크의 공격으로 인해 처형당한다.

 

파이크보고서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20만명 이상의 난민이 겨우 이란으로 피신했다 일단 이곳에 이르렀지만 

미국과 이란 어느 나라도 적절한 인도주의적 원조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이란은 이들 난민들 중 4만명을 강제로 되돌려 보냈으며 

미국은 이들이 입국할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난민도 정치적 망명을 통한 미국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극적 사건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파이크위원회 위원들과 인터뷰를 가졌을 때 

키신저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말로 전해오는 답변을 남겼다

 "공작활동을 선교사업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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